보닛을 열었을 때 마주하는 낯선 풍경
이전 글에서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가 가져온 공간의 혁신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거대한 스케이트보드형 바닥 위에서 실제로 바퀴를 굴리는 '심장'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내연기관 차에 익숙한 운전자가 최신 전기차의 보닛을 열면 크게 당황하곤 합니다. 거대한 엔진 블록과 복잡하게 얽힌 벨트, 오일 게이지 대신 매끄러운 플라스틱 커버나 조그만 앞 트렁크(프렁크) 공간만 덩그러니 있기 때문입니다.
기존 자동차의 핵심이 엔진과 변속기였다면, 전기차의 핵심은 이를 완벽히 대체하는 'PE(Power Electric) 시스템'입니다. 과거 파생형 전기차 시절에는 모터와 인버터, 감속기가 각각 별도의 부품으로 만들어져 굵은 고전압 케이블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부피도 크고 전력 손실도 잦았습니다. 현대자동차는 E-GMP를 도입하면서 이 세 가지 핵심 부품을 칼로 두부를 자르듯 하나로 묶은 '3-in-1 올인원 PE 시스템'을 완성했습니다.
모터, 인버터, 감속기가 하나의 몸통으로 합쳐진 이유
올인원 PE 시스템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공학적인 집약체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첫 번째 구성 요소는 '모터'입니다. 배터리의 전기를 받아 회전력을 만드는 전기차의 엔진입니다. 두 번째는 '인버터'입니다. 배터리의 직류(DC) 전기를 모터가 쓸 수 있는 교류(AC) 전기로 변환하고,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밟는 양에 따라 모터의 속도를 정밀하게 제어하는 컴퓨터 브레인입니다. 세 번째는 '감속기'입니다. 내연기관의 변속기 역할을 하는 부품입니다.
이 세 부품이 하나의 하우징(껍데기) 안에 밀착되면서 두꺼운 연결 케이블이 사라졌습니다. 덕분에 부품 전체의 무게와 부피가 획기적으로 줄어들었습니다. 부품이 가벼워지면 차가 소비하는 전력 효율, 즉 '전비'가 올라갑니다. 또한 전기가 이동하는 경로가 짧아지면서 중간에 버려지는 에너지 손실도 극적으로 차단되었습니다. 공간이 남으니 실내 구조를 넓히거나 보닛에 추가 트렁크를 만드는 설계적 자유도까지 얻게 된 것입니다.
전기차에는 왜 8단 변속기 대신 '1단 감속기'가 들어갈까?
일반 가솔린이나 디젤 차는 시속 100km로 달리기 위해 6단, 7단, 8단 등의 복잡한 변속기를 거쳐야 합니다. 내연기관 엔진은 분당 회전수(RPM)가 너무 낮거나 너무 높으면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멈춰 있을 때 큰 힘을 내려면 1단 기어가 필요하고, 고속으로 갈 때는 엔진 과열을 막기 위해 높은 단수의 기어가 필수적입니다.
반면 전기차 모터는 태생부터 다릅니다. 모터는 전기가 들어오는 첫 번째 회전부터 최대 토크(뿜어져 나오는 힘)를 고스란히 발휘합니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속도가 내연기관보다 압도적으로 빠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모터는 분당 최대 1만 5천 번 이상(15,000 RPM) 부드럽게 회전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전기차는 기어를 여러 단으로 쪼갤 필요가 없이, 모터의 고속 회전을 바퀴가 굴러갈 수 있는 적절한 회전수로 낮춰주는 '1단 감속기' 하나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변속 충격이 전혀 없이 유기적으로 가속되는 전기차 특유의 매끄러운 주행 질감은 바로 이 감속기 원리 덕분입니다.
머리카락보다 얇은 기술의 차이, 헤어핀 권선 구조와 냉각 효율
현대차 PE 시스템의 모터 내부를 더 깊이 파고들면 '헤어핀(Hairpin) 권선 기술'이라는 숨은 공로자가 있습니다. 모터가 힘을 내려면 내부의 고정자에 구리 선을 촘촘하게 감아야 합니다. 과거에는 둥근 단면의 구리 선을 무작위로 칭칭 감는 방식을 썼는데, 동그란 선들이 맞물리다 보니 선과 선 사이에 빈 공간이 많이 생겼습니다.
현대차는 이 구리 선의 단면을 네모난 직사각형 모양으로 바꿨습니다. 마치 머리핀처럼 생긴 구리 막대를 빈틈없이 빽빽하게 정렬하여 밀집도를 극한으로 올린 것입니다. 공간 효율이 좋아지니 모터 크기는 작아지면서도 출력은 10% 이상 강력해졌습니다.
여기에 모터 내부 핵심 부품에 냉각 오일을 직접 분사하는 '유냉(오일 냉각) 방식'을 통합 적용했습니다. 가혹한 고속 주행이나 서킷 주행에서도 모터와 인버터가 과열되지 않도록 실시간으로 열을 식혀주는 데이터 제어 알고리즘이 함께 작동합니다. 겉보기엔 단순해 보이는 전기차 구동계 이면에는 이처럼 밀리미터 단위의 물리적 공간 제어와 초정밀 전력 변환 기술이 숨 쉬고 있습니다.
핵심 요약
현대차 E-GMP의 PE 시스템은 모터, 인버터, 감속기를 하나의 바디로 통합하여 무게를 줄이고 전력 전달 효율을 극대화한 올인원 구조입니다.
초기 회전부터 최대 힘을 내고 초고속 회전이 가능한 모터의 특성상, 복잡한 다단 변속기 대신 구조가 단순한 1단 감속기를 사용하여 매끄러운 주행감을 구현했습니다.
직사각형 단면의 구리 선을 활용한 헤어핀 권선 기술과 직접 분사식 유냉 시스템을 통해 모터의 크기는 줄이면서도 출력과 열 내구성을 크게 높였습니다.
다음 편 예고
다음 편에서는 테슬라를 비롯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가장 주목하는 현대차만의 독보적인 전력 기밀,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800V 초고속 충전 시스템의 원리와 멀티 인버터 승압 제어]를 상세히 분석해 드리겠습니다.
가솔린 차의 엔진 소리와 변속 느낌을 좋아하시나요, 아니면 전기차의 소음 없는 매끄러운 가속감을 더 선호하시나요? 여러분의 주행 취향을 댓글로 공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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